복음은 메이지 않는다 – 장재형목사

복음이란 무엇인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완성된 하나님의 구원 소식이다. 이 복음은 시간과 공간, 문화와 인종, 어떠한 경계나 제약을 뛰어넘어 전파되고 퍼져나가는 특성을 갖는다. 초대 교회 시대부터 21세기 현대에 이르기까지, 복음은 숱한 장애와 어려움을 마주해왔지만 결코 묶여 있거나 정체된 적이 없다. 복음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생동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는 사도 바울의 선언은 기독교 신앙 역사 전반에 걸쳐 변치 않는 진리로 남아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복음의 자유와 확장성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통찰이다. 장재형(장다윗, 올리벳대학교)목사는 설교와 강해를 통해 복음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매이지 않음을 강조해 왔으며, 이를 성도들에게 실제적인 도전과 위로로 전달한다. 그는 바울 사도의 옥중 상황, 디모데후서 2:9 구절, 그리고 바디메오와 같은 복음 수용자의 사례를 통해, 복음이 환경에 구속되지 않고 오히려 그 환경을 돌파하는 역동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 이 한 구절은 바울이 옥중에 갇혀 있을 때 쓴 글(디모데후서 2:9) 속에 담겨 있다. 몸은 갇히고 사슬에 묶여도, 하나님의 말씀이 자유롭게 전달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이 진리는, 복음이 결코 공간이나 상황, 시대적 제한에 머무르지 않음을 상징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현대의 복잡한 상황에 적용하면서, 어떤 환경적 제약도 복음 전파의 본질적 힘을 억누를 수 없음을 강조한다.

바울이 갇혀 있던 로마 감옥은 전도자의 입장에선 치명적 약점처럼 보인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설교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대신, 그는 한정된 공간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바울은 그를 지키는 시위대와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 결과, 복음은 오히려 이전에 닿을 수 없던 영역으로 파급되었다. 장재형목사는 이 역설적 상황을 통해, 외적 제약이 복음 전파를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바뀔 수 있음을 일깨운다.

비단 바울의 옥중 상황만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흔히 맞닥뜨리는 어려움은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환경이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혹은 “때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는 판단 아래 복음 전파를 미루거나 자제한다. 그러나 복음이 매이지 않는다는 진리를 실천적으로 이해한다면, 반드시 ‘최적의 환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오해에 불과하다. 복음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어, 예상치 못한 상황과 장소에서도 전파될 수 있고, 심지어 가장 비참한 환경 속에서도 역사한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통찰을 바디메오 이야기와 연결한다. 바디메오는 소경이었고, 거지였고, 사회적으로 가장 낙후된 위치에 있었다. 그는 볼 수 없었지만 들을 수 있는 귀를 사용했고, 외칠 수 있는 목소리를 통해 주님께 도달하려고 했다. 환경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그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실로 컸다. 그러나 이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바디메오는 주님이 가까이 오신다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아들 예수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친다. 제자들이 그의 외침을 막았음에도 바디메오는 계속 외쳤고, 결국 예수님의 긍휼로 구원을 받았다.

이 장면은 복음 전파자와 수용자 모두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에게나 전하는 이에게나, 환경은 절대적 장애물이 아니다. 바디메오는 볼 수 없었고, 거지였으며, 주위의 무시와 제재를 받았지만, 그 모든 상황을 돌파하고 주님께 나아갔다. 복음은 그의 비참한 처지 속에서도 매이지 않았다. 예수는 그를 외면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의 간절한 부르짖음에 응답하셨다. 이는 복음의 본질적 특성, 즉 어떤 형태로든 결박되거나 제한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킨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성경적 사례를 통해, 현대 성도들에게 “내 몸은 갇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어 있을 수 없다”는 바울의 신앙 고백을 현실에 적용하라고 조언한다. 오늘날 기술과 통신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물리적 제약이 과거보다 훨씬 더 적어졌다. 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인터넷, 전화, 우편,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설령 직접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거리나 신분, 지위, 문화적 장벽은 더 이상 복음 전파의 절대적 한계가 되지 않는다.

현대 교회는 이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비대면 상황이 많아졌고, 많은 교회가 전통적 예배 형태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온라인 예배, 소셜 미디어를 통한 말씀 전파,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복음은 오히려 새로운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이는 바울이 옥중에서도 복음을 전하던 원리가 디지털 시대에도 유효함을 보여준다. 물리적 공간에 매여 있는 것처럼 보여도, 복음의 힘은 결코 네트워크나 미디어를 활용하는 데에 제한받지 않는다. 복음은 기술 혁신에 맞추어 확장될 수 있으며, 이는 복음이 얼마나 자유로운가를 입증하는 또 다른 예라 할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바로 이런 현실적 적용을 통해, 복음의 자유와 능력을 성도들이 삶 속에서 경험하도록 돕는다. 그는 설교와 강해를 통해,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환경 탓을 하기보다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수단과 기회를 적극 활용할 것을 촉구한다. 복음 전파가 특정한 시기나 장소, 혹은 특별히 마련된 상황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성도들은 매일의 삶 속에서 복음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직장 속에서, 가정에서,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혹은 SNS를 통한 소통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문명의 편의 속에 살면서도, 복음 전파를 가로막는 것은 종종 환경적 요인이 아니라, 그 환경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믿음의 부족일 때가 많다. 장재형목사는 믿음의 눈으로 상황을 재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부름받은 정체성을 확인하라고 당부한다. 내 몸이 억제되고, 음성이 차단당하고,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매이지 않는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복음은 새로운 통로를 찾아간다.

이러한 신앙적 태도는 초대 교회의 경험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박해 시대에 크리스천들은 지하에서 예배를 드렸고, 강압적인 통치 하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복음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번져나갔다. 스티븐의 순교 후에 성도들이 흩어졌을 때(행 8장), 복음은 예루살렘을 벗어나 사마리아와 이방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이는 억압과 핍박이라는 환경적 제약이 복음 확장의 통로가 되는 역설을 드러낸다.

장재형목사는 이러한 성서적·역사적 사례를 종합적으로 제시하면서, 현대 성도들이 적극적인 복음 전파자, 복음 전달자로 서기를 촉구한다. 우리의 편의와 안락을 기다리는 동안, 복음은 스스로 전파되지 않는다. 복음은 능동적으로 발화될 때, 성장하고 확장한다. 성도들은 한정된 환경 속에서 새로운 전략과 방법을 모색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소식을 끊임없이 전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바울이나 초기 교회 선교사들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모든 신앙인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사명 의식이 된다.

나아가, 복음이 매이지 않는다는 진리는 단순히 외적 환경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장재형목사는 심층적으로 들어가, 개인의 내적 장애나 한계를 지적한다. 우리는 종종 개인적 상처나 두려움, 부족한 지식, 자신감 결여 등 내면적 제약에 사로잡혀 복음 전파를 주저한다. 그러나 복음은 이러한 내적 한계조차 넘어설 수 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오히려 더 완전해지며(고후 12:9),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약함을 느끼는 그곳에서 복음은 새로운 힘을 갖는다.

바디메오의 예를 다시 생각해보자. 그는 시각적 제약, 사회적 멸시, 제자들의 제지라는 삼중의 장벽을 마주했다. 그러나 그가 마음속에 품었던 믿음과 예수를 향한 갈망은 그 어떤 제약도 이길 수 있었다. 그가 외칠 때, 그 외침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절박한 외침은 예수를 움직였고, 기적이 일어났다. 복음이 바디메오에게 임한 과정은 외부 환경이나 사회적 태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그 복음의 능력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복음이 매이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히 “전달 경로가 막히지 않는다”는 뜻을 넘어선다. 복음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인간의 심령 속에서 역사하는 능력이다. 인간의 제한이나 실패, 불신, 반대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끊임없이 전진하고 영혼을 변화시킨다. 장재형목사는 이 점을 강조하며, 복음의 자유를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결부시킨다.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는 과정에서 복음은 어떤 장애도 절대적 제약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복음의 자유와 확장성은 현대 신앙인들에게 어떤 도전을 줄까? 가장 먼저,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환경 탓을 그만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복음 전파를 위한 “좋은 환경”은 늘 elusive(모호하게 사라지는)한 이상일 수 있다. 언젠가 조건이 완벽해지면 복음을 전하겠다는 태도는, 복음이 매이지 않는다는 진리에 정면으로 반한다. 복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파될 수 있으며, 우리의 삶 속에서 바로 지금 불신자나 연약한 믿음의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또한, 복음이 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교회 공동체에게도 깊은 책임을 부여한다.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는 구체적 전략을 세울 때, 현재 주어진 상황과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박해 시대의 교회가 지하에서 모이며 복음을 전했고, 디지털 시대의 교회가 온라인 미디어를 통해 복음을 확장하고 있다면, 교회는 시대와 환경에 창의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사명은 복음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전하는 것이며, 그 전파는 한계 상황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는 선언에 그치지 않고, 성도들이 실제로 어떻게 복음을 전할지 고민하도록 인도한다. 우리는 매일의 직장 생활에서, 가정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또한 SNS나 유튜브, 블로그, 팟캐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복음을 알리고, 신앙적 고민에 답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세상과 나눌 수 있다. 복음이 매이지 않는다는 건, 우리에게 새로운 영역을 향해 도전하라는 초대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복음이 매이지 않는다는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고난 속에서 복음의 의미를 다시금 성찰하게 한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나, 바디메오가 사회적으로 철저히 외면당하던 때나, 환경은 결코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 복음의 능력은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고난과 시련은 복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더 맑게 드러내는 정반대 상황으로 작용한다. 이는 박해 시대나 환난 속에서 오히려 교회가 성장하고 믿음이 정련되는 교회사적 경험과도 일치한다.

장재형목사의 설교나 강해를 통하면, 우리는 복음의 영적 역동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복음은 한 번 뿌려진 후 정지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 있는 씨앗처럼 역사를 관통해 계속 퍼져나간다. 우리가 그 복음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복음은 우리의 제한적 시야를 넘어 전 인류, 전 피조물 세계로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처한 상황, 감정, 제약은 결코 복음의 전파를 가로막을 수 없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들은 복음의 진가를 더 높이 드러내는 장이 될 뿐이다.

요약하자면, 장재형목사의 핵심적 가르침 중 하나는 “복음은 매이지 않는다”는 확신에 기초한다. 이 확신은 바울의 옥중 경험, 디모데후서 2:9 말씀, 바디메오의 구원 사건, 그리고 현대 교회가 마주하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 일관되게 드러난다. 이러한 인식은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 환경을 탓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두려움이나 주저함을 극복하며, 매 순간 복음을 외치고 전파하는 삶을 살 것을 요청한다.

복음이 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더 이상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은 바로 지금이며, 가장 적합한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복음은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전파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그 핵심에는 성령의 권능과 하나님의 주권이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 메시지를 통해 성도들이 복음 전파자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어떤 시련도 복음 전파의 이유를 앗아가지 못하도록 격려한다.

마지막으로, 복음이 매이지 않는다는 진리는 우리를 ‘가능성’이라는 단어와 연결시킨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모든 제약은 사실, 복음이 더욱 빛나고 새롭게 역사를 펼치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문화의 장벽, 언어의 한계, 사상적 대립, 종교적 편견 같은 것들도 궁극적으로 복음 앞에 무력하다. 복음은 이런 장벽을 가로지르며 새로운 길을 만든다. 초기 교회가 유대 문화적 울타리를 넘어 헬라 문화권으로 진출하고, 나아가 전 세계로 퍼져나간 이야기는 복음의 불가항력적 확장력을 웅변한다.

이 확장력은 오늘날에도 건재하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복음을 품고 살아가며,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을 복음 전파의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교회가 위축되는 듯 보이는 시대일수록, 복음의 자유와 능력을 신뢰하고,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전도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장재형목사의 가르침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성도들에게 “복음은 매일 수 없다”는 신학적 확신을 일깨우며, 그 확신 속에서 성도들이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삶을 살도록 권면한다.

결국, 복음의 자유와 확장성은 하나님의 성품과 경륜을 반영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요일 4:16), 그 사랑은 결코 한 곳에 고정되거나 장벽에 갇히지 않는다.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메시지이기에, 그 복음 역시 갇히지 않는다. 복음이 매이지 않는다는 진리는, 한편으로는 복음 전파 사명을 맡은 우리에게 도전이자 기회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이다.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 계속해서 세상을 회복하고, 생명을 불어넣으시며, 그의 말씀을 자유롭게 운행하신다.

이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일 때, 성도들은 환경에 대한 원망이나 무능함의 변명을 내려놓고, 믿음으로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복음 전하는 자로서의 정체성은 언제나 유효하며, 그 정체성은 우리가 세상 곳곳에서 복음을 손에 들고 대면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힘을 준다. 인간적인 시선으로는 결박된 것 같고, 차단된 것 같은 상황에서도, 복음은 매이지 않고 흐른다. 이 흐름에 동참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하는 기쁨과 소망을 누릴 것이다.

장재형목사의 핵심 메시지를 다시 상기하자: 우리의 육신은 매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 이 진리를 붙들며 성도들은 일상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으며, 주님의 긍휼과 능력을 기대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 전파를 멈추지 않는 신앙인의 길을 걸을 수 있다. 복음의 자유와 확장성에 대한 이 신앙적 확신은,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시대를 넘어 계속해서 빛을 발하며 성도들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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